여기,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 (한겨레21, 2016-06-22)

뜻밖의상담소
202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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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노동자 마음 어루만지는 상담심리사 김지연·오현정·유금분·하효열씨… 고통의 현장에 고립된 사회활동가·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 출범


슬픔을 퍼내도 슬픔, 고통을 짜내도 고통. 한국 사회는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고통의 뿌리’는 무엇인가.

유성기업부터 메르스(MERS)까지, 지난 1년 ‘고통의 연대기’를 살폈다. 슬픔·고통을 천착해온 철학자 김상봉을 만났다. 그는 “우리들이 참된 주체가 되어 만나야 한다. 만나서 길을 같이 찾고 같이 생각하고 형성해야 한다. 연대는 책에서 나온다”고 했다. 고통의 현장으로 달려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상담심리사들을 찾았다. 고통 속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새겨보았다.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 ‘세월호의 바다’. 보이는 고통, 안 보이는 전망의 시대. 스크럼을 짠 파도가 바위섬에 부딪친다.

취재 전진식·박승화·박수진 기자, 편집 신소윤 기자, 디자인 장광석

사회적 고통에 손 내밀기 위해 현장으로 걸어나가고 네트워크를 확대하려는 상담심리사들. 왼쪽부터 오현정, 하효열, 유금분, 김지연씨. 류우종 기자


마음을 다루는 사람들이 ‘사회적 고통’의 현장으로 달려간다.

상담심리사들이 7월1일 도움이 필요한 노동자와 사회활동가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활동을 확대하기 위한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通統talk)’을 출범시킨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센터 와락치유단,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심리치유를 지속해온 충남노동인권센터의 두리공감, 노동자들의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길목협동조합 심심 프로젝트팀, 심리상담 전문단체 마음의 숲 치유센터, 영등포산업선교회,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등 8개 심리치유그룹과 노동단체 등에서 심리치유 활동을 해온 상담심리사와 활동가 30여 명이 뜻을 모았다. 7월1일 네트워크가 공식적으로 시작되면 더 많은 상담심리사들이 함께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6월15일 오후 9시, ‘통통톡’을 통해 ‘위기에 처한 마음’들이 자연스럽고 쉽게 치유에 접근할 수 있도록 상담심리사들의 연결망을 확대하려는 김지연·오현정·유금분·하효열씨를 만났다. 이들은 이미 쌍용자동차, 유성기업,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등 여러 사업장에서 싸우다 지친 노동자들, 그들을 지원하며 함께 지친 사회활동가들의 마음을 다독여왔다. 김씨와 하씨는 서울시민의 마음건강을 위한 심리치유 프로젝트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를 진행하기도 했다.


심리상담실은 그동안 상담사와 내담자가 만나 고통과 아픔을 나누기 위해 마음을 주고받는 내밀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해고가 빈발하고, 국가의 방임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나는 등 ‘사회적 고통’이 많아지면서 상담실 안의 상담사들이 현장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이들은 왜 밖으로 걸어나왔을까. ‘현장’에서 마주하는 고통은 어떤 것일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슬픔이 어처구니없이 유예되는 사회

상담심리사들이 상담실 밖으로 나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찾아가고 있다.

오현정  ‘세월호’가 변곡점이 됐다.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상담심리사·심리학자들이 사회적 약자나 시대적 고통에 동참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변화가 있었다. 심리학자 383명이 당시에 성명서를 냈다. 성명의 주제가 ‘진실만이 치유할 수 있다’였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제대로, 마음껏 슬퍼할 수 없다. 당사자들은 잃은 가족을 떠나보낼 수도 없다. 슬픔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유예되고 있다. 마음의 작동 원리를 다루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효열  심리상담사들은 기본적으로 공감력이 매우 높다. 2년 전을 돌아보면, 전 국민이 슬퍼하는데 권력을 지닌 사람들만 그 슬픔에 공감하지 않았다. 전 국민이 트라우마 상태에 빠지겠구나 생각했다.

김지연  상담은 한 사람의 내면을 다루는 작업이라, 보통 개인의 내면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세월호라는 사건을 계기로 개인을 둘러싼 환경이 얼마나 마음건강을 훼손하는지 선명하게 깨달았다. 내 마음이 아픈 그 지점에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는 어떻게 현장과 결합하게 됐나.

유금분  어린이도서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독서치료를 하다가 청소년 상담을 하게 됐다. 2011년부터 병원에서 상담했다. 그해에 쌍용자동차 한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겨진 아이들이 부모를 잃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청소년 상담을 오랫동안 해와서 아이들 일이라면 마음에 빨리 와닿는다. 그래서 쌍용차 해고자들과 만나고 그들을 치유하는 활동을 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유성기업의 직장폐쇄 소식을 들었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버티다 못해 죽음을 택했던) 쌍용차 노동자처럼 내몰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2012년부터 만나왔다.

하효열  내 자신이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부위원장이었고 해고노동자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관계의 문제가 사람들을 괴롭히는구나 느끼게 됐다. 세상을 바꾸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들려 애쓰는 사람들끼리 그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주고받았다. 그 상처를 돌보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상담을 공부했다. 내 공부의 시작이 그랬던 만큼, 현장에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마침 ‘와락’이 그 일을 하고 있었다. 와락에 찾아갔고 현재는 와락치유단장으로 일하고 있다.

김지연  지인들의 영향이 있었다. 친구가 성소수자 문화 인권활동(사단법인 신나는센터)을 시작하면서 성소수자들의 마음건강과 치유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 기획을 부탁해서 돕게 됐다. 또 평범한 주부였던 어머니 친구가 밀양에서 송전탑 반대 운동을 하게 되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현장에 가려고 해서 간 게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가까운 사람들, 그들이 마음 쓰는 곳에 함께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오현정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마음이 소진된 활동가들, 외환위기 이후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실업자들의 심리적 고통을 마주하게 됐다. 그런 분들이 심리상담에 접근하기에는 고비용 등 상담실 문턱이 너무 높다. 내가 직접 공부해서 이들에게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목매고 외쳐야 겨우 세상이 들어줄까

현재 공통적으로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하효열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2011년 5월 직장폐쇄 이후 5년째 싸워오고 있다. 5년 동안 긴장도를 높여가며 싸우다보니 심리적 소진 상태에 이르렀다. 3년 전에 내려갔을 때만 해도 평조합원들은 술자리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힘들기 때문에 서로에게 힘듦을 털어놓을 수 없다. 월급도 거의 3분의 1로 줄어 실질적·심리적 여유도 없다. 그 스트레스가 결국 가정으로 간다. 이미 많은 분들이 이혼했다. 어려운 시기를 버티며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분들도 가정 내 일상적인 관계조차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다.




“연대로 치유가 된다. 해고노동자, 특히 오래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많이 지나면 잊힐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세월호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그래서 오래, 자주 내 시간을 헐어서라도 그들 옆에 있어주려고 한다.”

-유금분




유금분  공장 안 식당에서 밥을 제대로 못 먹는 경우가 많다. 관리자가 밥 먹는 걸 보면 분노가 치민다. 식판을 던질까, 주방에서 칼을 가져올까 온갖 생각을 매우 구체적으로 한다. 걸음 수를 세고 몇 초가 걸릴지 시간까지 계산한다. 너무 구체적으로 생각하다보니 본인이 정말 일을 저지를 것 같아 아예 밥 먹기를 포기한다. 소화불량, 구토 등 여러 신체적 증상도 나타난다.

싸움이 길어지다보니 어떻게 이 싸움을 끝낼지 계속 고민한다. 얼마 전 세아제강 해고노동자들이 양화대교에 올라갔다. 그러면 ‘나도 올라갈걸, 나 하나 올라가서 우리 싸움이 해결될 수 있다면’ 생각하고, 내가 어디서 목매고 무엇을 외쳐야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길고 외로운 싸움을 세상이 알아줄지 생각한다. 상담자인 나의 불안도 더불어 올라간다. 뉴스를 보고 들으면서 ‘혹시’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노동자 해고, 세월호 참사 등은 개인적 결함에서 비롯한다기보다 효율과 비용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체제, 국가의 무책임과 방임, 시스템 부재 등 사회적 요인에서 비롯하는 고통이다. 이런 ‘사회적 고통’은 ‘개인적 고통’과 어떻게 다른가.

유금분  무언가를 잘못해서 오는 고통이라면 감수하고 받아들이는데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 불이익과 고통이 오니 그걸 수용하는 일이 너무 힘들다. 수용하는 게 옳지도 않다. 이를테면 노동자들은 법이 보장한 권리에 따라 파업했는데, 회사가 갑자기 직장폐쇄를 하고 고소·고발을 하고 징계를 하고 손해배상 소송을 거는 식이다.

하효열  억울함의 정서가 크다. 사람은 누구나 성격적 차이가 있고 약한 고리가 있다. 그런데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변인에 의해 고통이 오는 경우 개인이 가진 약한 고리가 최대치에 이르게 된다. 개개인의 성격적 특성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이런 상황에서 구조적 결함을 보지 않고 개인적 결함을 따지고 드는 게 또 이 나라다. 억울함이 더 커진다.

이런 종류의 고통을 어떻게 치유하고 있나.

하효열  버티게 해줘야 한다. 그들의 삶도, 일도 계속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버티려면 유연해져야 한다. 어떤 사건이나 결과에 직면했을 때 한 측면에서만 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시각으로 그 사건을 접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를테면 ‘쌍용자동차 해고가 적법하다’는 판결이 났다. 더 이상 출구가 없어 보인다. 그럴 때도 ‘졌다’ 같은 한 가지 생각에만 빠지지 않도록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건을 얼마나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지 상담심리사가 함께 검토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이야기해주고 그럴 수 있도록 돕는다.

유금분  연대로도 치유가 된다. 해고노동자, 특히 오래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많이 지나면 잊힐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세월호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잊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잊히고 고립되면 어떤 비합리적인 상황이 닥쳐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 불안이 커진다. 그래서 오래, 자주 내 시간을 헐어서라도 그들 옆에 있어주려고 한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일주일에 이틀 상담하고 최소 두 번은 농성장에 가려는 이유다.

오현정  직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 특히 장기투쟁 사업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지지’와 ‘응원’이다. 현장에서 그들이 투쟁할 수밖에 없는 심정과 처지를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4월,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하고 있을 때 철탑 위로 올라갔다. 마침 그들과 내가 동갑이었다.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눴다. 하늘에서 외로운 이들에게 ‘당신들에게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사람이 여기 한 명 더 있다’라는 마음을 건네고 싶었다.

자본주의의 룰에 따라 강요된 고통

오현정 상담심리사는 “자기를 돌볼 틈이 없어 몸과 마음의 극한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돌볼 틈을 만들어주기 위해 상담심리사가 현장으로 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효열 와락치유단장은 “지금의 고통은 자본주의의 룰에 따라 강요된 것이다. 자율적으로, 주체적으로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더 힘들다. 통통톡을 통해 이 고통을 조금 더 자주, 많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열고자 한다”고 말했다.

‘통통톡’은 고립돼가는 고통의 현장에 뿌리는 연대의 씨앗이다. 그 연대는 마음 치유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당신도 할 수 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한겨레21, 2016-06-22)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19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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