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구조 속의 내담자, 감정노동자를 만나다.

뜻밖의상담소
20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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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서을시 감정노동센터가 시범사업을 시작한 이래, 지난 4년 동안 상담실에서 다양한 직군의 감정노동자를 만났습니다. 상담실에서 호소하는 아픔의 모습은 상황과 처지에 따라 다르지만 무능이나 의지, 근면 등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거나 열악한 가정 환경을 원망하며 고통을 개인화하는 모습은 닮아 있다고 느꼈어요. 무한 경쟁과 성과주의 사회에서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그림자가 우리 마음에 그대로 비춰지고 있는 거지요. 가족 갈등이나 개인적인 이슈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자세히 그 고통을 나누다보면 사회적인 통념이나 가부장적인 문화와 닿아 있습니다. 고객만족을 경영철학으로 삼고 친절서비스 경쟁을 해온 기업문화와 성차별적인 사회구조가 마음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유래없는 재난을 겪으면서 재난이, 환경이 마음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우리 모두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요. 

이제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된지 3년이 되어갑니다. 법 시행 후 감정노동자들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하청, 파견,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보호받을 수 없다는 현행법의 한계도 있지만 사업주(조직)의 무관심과 조직의 소극적인 태도로 제대로 된 보호 조치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여전히 많습니다. 특히 고객을 응대하는 과정에서의 폭언이나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등 일터에서의 어려움은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워서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상담실에서 만나는 내담자분들의 변화가 조금씩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가장 큰 변화는 권리 의식과 감정노동 보호인식의 확장입니다. 고객 갑질을 더 이상 참거나 견디지 않고 조직이나 기관에 보호와 해결을 요청하는 분들을 상담실에서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상담에서는 ‘존중받을 용기’를 내신 분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면서 그 여정을 함께 하는데요, 정말로 쉽지 않은 길이라고 느꼈습니다. 특히 조직의 지지와 보호가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의 경험을 살펴보려 합니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해님은 고객의 무시와 폭언을 수차례 경험하면서 처음은 놀라고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한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며 익숙해지려고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무시하고 비하하는 태도로 꼬투리를 잡고 시비를 거는 고객과 전화 상담을 하면서 영혼이 털리는 듯한 상당한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회사에서 일어난 일은 회사에 두고 퇴근한다고 생각했는데도 평소와 다르게 고객의 말투가 계속 떠오르며 불쾌하고 화가 나면서 잠을 잘 못자고 다음날 출근을 해서는 또 그런 고객에게 전화가 오면 어떻게 하나라는 불안감으로 일하는 게 힘이 들면서 신경안정제도 처방받았습니다. 고통이 지속되면서 감정노동자 보호법과 제도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직과 소통하면서 회사가 고발을 진행하기로 하고 콜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 부서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상담에서 내담자의 ‘존중받을 용기’를 지지하고 새로운 부서에서의 적응을 돕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법과 제도가 사회적인 안전망의 토대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갑질하는 고객을 만나는 것은 우연이지만 고객의 갑질에 단호하게 대처하고 보호조치를 하는 조직의 방침은 치유와 회복의 필수 조건입니다.

달님은 술에 취한 고객을 응대하는 과정에서 성추행을 경험했습니다. 상급자에게 보고하였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고 고객을 응대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보호법에 명시되어 있는 작업 중지권, 피난권이 현실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은 거지요. 달님은 유관한 부처에 진정을 내고 여성단체에 상담도 하고 혼자서 싸움을 시작합니다. 지난하고 힘든 어려움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 하지 않으면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온전히 개인이 혼자 대처하면서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들었지만 조직의 다른 상급자와 소통을 하면서 조금은 회복의 숨구멍이 트였습니다. 이처럼 일터에서 겪는 폭력으로 인한 손상에서 회복되는 과정에는 개인적인 노력만이 아닌 조직의 지지와 보호가 중요합니다.

한편 감정노동종사자들은 몸과 마음을 함께 살피는게 중요합니다.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는 근무시간 내내 고객 응대에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계속 긴장된 상태로, 소위 교감신경이 흥분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자신의 실제 감정과는 다르게 특정한 감정만을 표현하는 감정부조화를 겪으면서 긴장상태 속에서 일하다보면 업무가 끝난 후에도 과각성이 유지되면서 수면장애나 알콜, 카페인, 흡연 등 물질 남용 등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이완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담 과정에서 심리적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혼란스러워하거나 시선을 아래로 떨구거나 얼어붙은 반응을 보일 때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거나 그라운딩을 통해 지지감, 안전감을 경험하도록 돕는데요. 상사의 질책을 들을 때마다 세상에 혼자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호소하는 해님은 몸의 안전감을 느낄 때 직장에서의 경험이 가족 관계에서의 경험과 유사하게 반복되는 과정을 알아차리고 어린시절의 트라우마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창구에서 고객을 응대하면서 폭행을 당할 뻔한 둥이님은 불안감이 올라 올 때마다 상담에서 배운 안정화 기술의 도움으로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경험을 나눠주셨어요. 이처럼 불안하고 긴장되는 순간에 호흡이나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면서 자신과 연결될 때 자신의 몸을 자원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서울시 감정노동종사자지원센터를 통해 만난 내담자들은 상담을 받고 싶어도 경제적인 부담으로 쉽지 않는 현실에서 상담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고 사회적인 지지와 돌봄을 받는 것 같아서 고맙고 든든하다고 합니다.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지원센터가 감정노동자들의 심리적인 안전망으로 자리 잡아 가는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감정노동 종사자를 만나면서 법이나 제도, 정책 등이 치유와 회복의 중요한 자원임을 느낄 수 있었고 상담자로서 감정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에도 더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 인용된 사례는 각색되었습니다.

※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지원센터의 상담사례집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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