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_ 온전한 삶을 위한 단상

뜻밖의상담소
2022-09-27
조회수 236

오랜만에 단비생각으로 인사드립니다. 잘 지내셨어요? 여러 일들로 마음 무거운 때,  맑은 하늘과 햇살, 부드러운 바람결에 위로받는 가을입니다. 얼마전, 정말로 상식적이지 않은 사고가 되풀이됨에도 불구하고,  현장실습생 제도는 취업률과 연관되어 있어 폐지가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숨이 턱 막혔어요.  경비노동자가 3-4개월마다 계약서를 쓰고, 입주민에게 민원을 받으면 일자리를 잃는다는 기사를 읽으면서는 감정노동으로 인한 고통에 생계의 위협까지 가중되는 무게감에 먹먹하고요.  이용자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출근 길에 일자리를 잃은 돌봄 노동자 이야기도 결혼과 출산 후에도 다닐 수 있는 직장을 구하려고 일을 하면서도 자격증 공부로 고군분투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래요. 상담에서 사회 구조적인 어려움이 개인의 삶에 투영되어 고통을 호소할 때 먹먹한데요. 별님(가칭, 33세)이 그랬어요. 별님은 파견업체에서 2년을 일하고 본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어요. 실적도 우수하고 조직에서 인정을 받고 있지만 직장 상실에 대한 불안과 무기력을 호소합니다. 정규직이 될 수 없는 구조에서 계약기간이 종료되면 직장을 다시 구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2-4년마다 직장을 옮겨야 하는 터라 동료 관계를 맺기도 쉽지 않고 경험이 쌓이고 경력이 있어도 계속 구직을 해야 하니 점점 위축되고 나이가 들면 취업도 더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짓눌리는 듯한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개별화된 고통은 우리를 더 무기력의 늪으로 끌어 당깁니다.

현실의 고통은 과거 ‘그 순간에 내가 조금 더 잘했다면, 다른 선택을 했다면’이라는 자책과 후회의 수레바퀴를 돌리게 합니다. 어려운 집안 사정이나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고통이 개별화될수록 우울과 무기력은 더 강력하게 우리를 늪으로 끌어당깁니다. 내담자와 함께 고통의 터널을 지나며 자신에게 모질게 대하는 모습과 사회 구조의 어려움을 같이 바라볼 수 있을 때 가뿐 숨이 잦아 들고 조금은 더 긴 숨을 내쉴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용형태인 비정규직은-자발적인 의사에 기초하지 않을 때-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기 어렵게 합니다.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일터에서의 부당한 경험이나 폭력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기도 하지요. 상담실에서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노동환경이 노동권이 우리들 마음건강을 지키고 돌보는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다시금 느낍니다. 


비정규직은  지금-여기에서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기 어렵게 합니다.

 우리상담자들도 예외는 아니지요. 2018년 학교에서 일하는 상담사들이 불안정한 노동 현실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려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했는데요. 당시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에서 실시한 직무스트레스 평가에서 직무불안정 항목이 92.2점(50.1점 이상일 경우 상위 25% 수준, 경기도 화성시 관내 학교 청소년 상담사)으로 매우 심각했습니다.  학교 만이 아닙니다. 2017년 국회에서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인력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토론회가 열렸지만 이후 현장의 변화로 얼마나 이어졌는지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시민의 정신건강을 일선에서 돌보는 대부분의 공공기관도 수탁구조로 운영되고 계약직으로 일하는 현실에서 민간 영역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로컬 상담센터나 EAP 등은 프리랜서나 특수고용의 형태라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듯  마음을 돌보는 일을 하는 상담자들도 일터에서 심리적 안전감을 느끼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상담자들이 목격자로서 어떻게 사회적인 목소리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물론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하청도급, 플랫폼노동 등 다양한 고용형태가 사라질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일터에서 우리의 존엄이 존중받지 못하고,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이 정당화되는 구조가 점점 더 공고해지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삶의 존엄을 지키고 행복할 수 있을까 온마음으로 고민하는 날들입니다.  비정규직이 겪는 사회적 배제가 마음 건강을 얼마나 손상시키는지 상담자들이 목격자로서  사회적인 목소리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상담자들의 노동현실을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을까, 가을은 깊어가는데 고민은 뭉게구름마냥 피어나기만 합니다. 그렇게 시월을 지내고 있습니다.   


* 상담 사례는 각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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