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문제 해결이 아니고 내 마음의 회복이에요

뜻밖의상담소
2022-09-29
조회수 637

[상담심리사 인터뷰] 김지연 상담심리 전문가를 소개합니다


"상담할 때 떠올리는 장면이 있어요. 핀 조명이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사람에게 쫙 쏟아지는 장면이에요. 상담사가 주인공이 아니에요. 저는 관객으로서 어둠 속에 있고, 제 앞에서 내담자의 삶이 펼쳐지는 모습을 상상하죠. 이건 그 사람의 소설이고, 그 사람의 이야기예요. 저는 물어봐주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한 자 한 자 잘 써 내려갈 수 있도록. 

내가 이 사람 마음보다
앞서 가지는 않나


제가 상담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내가 잘 공감하고 있는가'예요. 내가 그 사람 마음보다 앞서 가지는 않나? 마음으로 그 사람을 잘 따라가고 있나? 상담을 하다 보면 '이렇게 하면 좋을 텐데. 이렇게 한번 해보세요'라는 마음이 들 수 있거든요. 지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이 사람은 어째서 이런 마음일까?' 궁금함을 가지고 묻는 역할을 하려고 노력해요.


'이렇게 하세요'라고 방법을 이야기하는 건 단적으로 말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강연이 아무리 감명 깊어도 그 영향으로 내 삶까지 변화하는 건 드문 일이에요. 왜냐면 내 일상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적용해보고 시도해보고 수정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거든요. 과정이 없는 생각과 감정은 금방 휘발되어버려요.


그렇기 때문에 방법을 제안하기보다 그 사람의 삶에 스며들어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더 큰 변화를 만들거든요. 심리학 책에 나와있는 옳은 답을 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주지 않고, 늘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제가 상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왈이의 마음단련장에서

김지연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김지연 선생님 약력

- 한국상담심리학회 1급 상담심리전문가

- (현) 커뮤니티심리상담소 운영

- (전) LG상사 사내 상담실 운영 


상담은 가르쳐주거나 이끄는 것이 아니라 반 발자국 뒤에서 따라가며 상담을 받는 사람이 스스로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기업에서 사내 상담사로 오랜 기간 근무하셨는데, 여러 선택지 중에 사내 상담소를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청소년 상담 센터도 있고, 개인 센터도 있고, 굉장히 많은 선택지가 있는데 저는 기업에 가고 싶었어요. 왜냐면 그때는 일반 회사원이나 운동선수, 그들이 살고 있는 삶을 더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회사원의 민낯을 마주하며 느끼신 점이 있을 것 같아요.

회사..(웃음) 무엇보다 이제 더 이상 회사라는 공동체가 심리적 의지처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모든 게 너무 즉각 즉각 이루어지다 보니까 마음을 얘기하고 상대방을 살필 여유가 없어요. 일의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막 달려가는 분위기일 때 개개인 삶의 어려움이나 우리 개개인이 느끼는 지점을 더 이상 동료들과 나눌 수 없는 거죠. 


사실 사내 심리상담실이 공동체에 필요한 감정적 역할을 떼어내서 담당하는 느낌도 받았어요. 마음을 말하는 곳을 외주를 준 게 아닐까. 우리 예전에는 다 집에서 세탁하다가 요즘은 그 기능만 떼서 세탁소에 맡기잖아요? 그런 것처럼요. 마음 상태를 소통하지 못하다 보니 생겨나는 오해도 많고, 회사라는 곳 안에서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잃는 게 참 많다고 느꼈어요. 


몸이 아픈 건 그래도 인정하지만 마음이 아픈 건 인정이 안 될 것 같은 부분이 있잖아요. 마음 둘 곳이 참 없다보니 사내 심리상담실은 회사 내 대나무 숲이기도 하고 때로는 휴식처이기도 한 곳이었어요. 상담실 프로그램이 팀 프로그램이나 워크숍을 통해 상호 이해를 돕거나 갈등을 다루는 일들을 하기도 했어요. 어떤 팀은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하게 이용하기도 하고, 특히 연말에 한 해를 마무리하며 속 터놓고 얘기하는 자리를 가져보자며 요청을 주시기도 했어요. 


선생님도 개인 상담을 받아보신 적이 있나요?

갓 졸업했을 때만 해도 제 아픔을 완전히 마주하지는 못한 상태였거든요. 대학원 졸업하고 개인상담을 받아가면서 청소년기에 제가 마음이 아팠던 걸 알게 되었어요.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힘들 때가 있었지만 지나왔어' 이렇게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과거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개인 분석을 받으면서 내게 그 시기가 정말 아픈 시기였고, 그래서 그 시기의 청소년과 마음을 열고 만나는 것을 어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아팠던 사람이 아픔을 본다


제가 상담을 2년 정도 받았는데 받는 내내 학창 시절 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나는 거예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휴지 산을 쌓고 왔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웃음) 지나고 보니 그렇게 운 것이 그때의 어린 나를 위해서 지금의 내가 울어준 것 같아요. 그때는 내게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견뎌냈거든요. 어린 나의 이야기를 상담 선생님이 귀 기울여 들어주고, 또 지금은 어른이 된 내가 말하면서 다시 들어주고, 그렇게 어른 둘이서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시간을 가졌어요. 이제는 그 시기를 자세하게 떠올려도 예전만큼 아프지 않고, 이제 비슷한 때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됐어요.  


상담사에게 개인 상담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상담사가 되는 과정 중에 개인 상담을 받아보는 것을 권장해요. 어떤 분들은 필수라고 하기도 하고요. 아픔을 마주하고 그것을 위로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깊이 바라보고 함께 해줄 수 있을 테죠. 좋은 선생님한테 배워본 사람은 아는 것을 어떻게 전달하는 게 좋은지 그 교수법을 경험한 셈이니까 다른 사람에게 더 잘 전달할 수 있겠죠. 경험이 핵심이라고 봐요.


선생님은 혹시 상담받아보셨어요?
라고 물어보셔도 괜찮아요


상담사분을 만났을 때 '선생님은 혹시 상담받아보셨어요? 얼만큼 받아보셨어요?'를 물어보셔도 좋아요.


'선생님도 상담받아보셨나요?'라는 질문의 속뜻은 무엇일까요?

'자신에 대한 분석을 해보셨나요?' 일 것 같아요. 이 정보가 저한테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상담사라도 얘기 들으면서 자기 안에 불쑥불쑥 솟아오는 감정들이 있을 텐데 그런 감정을 잘 다뤄본 적이 있는 사람인지가 궁금했어요. 알면 더 신뢰가 갈 것 같았고요. 유럽의 어느 학회에서는 개인 분석(상담심리사가 받는 개인 상담)을 150시간 받는 것이 상담사가 되는 것의 필수조건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는 이런 조건은 없지만,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그걸 극복하는 과정이 상담사들에게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상담 분야에 '타짜'들이 많은데, 좋은 상담사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독일 같은 경우는 1회 상담 비용으로 3명을 만나보고 그중에 잘 맞는 선생님을 내가 고를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되어있다고 들었어요. '이런 선생님이 좋다, 여기가 답이다'라는 정답은 없어요. '이 선생님을 만나보니 내 얘기를 참 잘 들어주고 편견 없이 들어주시겠다. 더 속마음을 얘기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가장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기본 전제는 정식 상담 수련을 받은 사람이에요. 5-10년 정도 걸리는데 개인 슈퍼비전, 개인 분석을 받고 공인된 자격증(한국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1,2급), 한국상담학회 전문상담사 (1,2급), 한국임상심리학회 임상심리전문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등)을 취득한 분들을 권해드리고 싶어요. 꼭 자격증이 있어야 하거나 자격증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건 아니지만, 정식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면 자격사항을 일차적으로 꼭 확인하세요. 


상담사로서 지향하는 것과 지양하는 것이 있을까요?

상담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내가 잘 공감하고 있는가'예요. 내가 그 사람 마음보다 앞서 가지는 않나? 마음으로 그 사람을 잘 따라가고 있나? 상담을 하다 보면 '이렇게 하면 좋을 텐데. 이렇게 한번 해보세요'라는 마음이 들 수 있거든요. 지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이 사람은 어째서 이런 마음일까?' 궁금함을 가지고 질문하려고 노력해요.


상담할 때 떠올리는 장면이 있어요. 핀 조명이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사람에게 쫙 쏟아지는 장면이에요. 상담사가 주인공이 아니에요. 저는 관객으로서 어둠 속에 있고, 제 앞에서 내담자의 삶이 펼쳐지는 모습을 상상하죠. 이건 그 사람의 역사고, 그 사람의 이야기예요. 저는 물어봐주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한 자 한 자 잘 써 내려갈 수 있도록.


만약 상담을 받다가 공감을 잘 못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되물어보셔도 돼요. "선생님 제 얘기가 어떻게 들리세요?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게 사실 제게는 잘 적용되지 않아요." 이렇게 이야기해주시면 잘 훈련받은 상담사들은 알아차릴 거예요.


선생님의 상담 스타일을 간단한 형용사로 표현한다면?

자기 성찰을 하려고 하는. 어려운 일이라 늘 하지는 못하겠지만 노력해요.

판단하지 않는
내담자의 삶을 존중하고 따라가는

모두가 다 다르고 모두가 아픈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아는

각자의 건강한 부분을 발견할 줄 아는.

제 입으로 말하기 굉장히 쑥스럽네요!☺️


왜 '상담심리사'라는 길을 선택하셨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해와 소통에 목마른 아이였어요. 내 얘기를 좀 들어줬으면 좋겠고, 내 마음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고. 세상의 여러 가지 언어 중 저는 상담이 '이해와 소통'의 언어라고 생각해요. 


목마름을 상담을 통해서 해갈할 수 있었어요. 세상 전체를 바꿀 수도, 너를 바꿀 수도 없지만 이 공부를 통해 내가 '나'는 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좀 더 이해해주고, 알아주고, 나를 좀 더 잘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상담이라는 언어를 나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마음공부는 대학원에서 끝난 게 아니고 계속되는 것 같아요. 내가 뭘 원하지? 어떤 게 필요하지? 내가 어떤 걸 말 못 하고 있었지? 나를 돌보고, 나에게 관심을 갖고, 나를 챙겨주고. 상담사라는 직업을 가진 개인으로서 가장 행복한 지점인 것 같아요.


'이런 분들은 내게 꼭 오셨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신 적 있나요?

소중한 사람을 잃고 슬픔에 잠겨있는 분들은 꼭 오셨으면 좋겠어요. 죽음으로 잃어버릴 수도 있고, 이별로 잃어버릴 수도 있고, 갈등을 통해 멀어진 상태일 수도 있고. 그런 분들을 특히 많이 만났고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같이 아파하고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왔고, 한 발도 내딛을 수 없는 상태에서는 그 시기를 같이 버텨왔어요.


미투 운동 이후로, 예전에 경험했지만 그때는 잘 몰랐던 언어적, 신체적 성폭력으로 마음이 고통받는 분들을 보게 돼요. 이런 뉴스를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간접적 트라우마라고 보기 때문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트라우마 사회에 노출되어 있는 참 어려운 시기라고 생각해요. 갑자기 잠이 안 오거나, 뒤늦게 분노가 몰려오거나, 사람들이 무서워지거나.. 이런 경우도 오시면 좋겠어요.


중요한 건 문제의 해결이 아니고
 내 마음의 회복이거든요. 


내 마음이 괜찮아지면 어떤 경험을 해도 살아갈 수 있어요. 그 과정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 자신도 그런 경험을 해보았거든요.


앞으로 상담사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더 상담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거겠죠?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고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지혜로워지고,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도 마음을 잘 맞출 수 있고. 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 제 숙제입니다. 그러면 저도 많이 편안해지고, 제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


마음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해요. 잘 살기 위해서 몸은 건강하게 단련도 하고 꾸미기도 하잖아요. 그만큼 마음도 돌보고 가꿔야 하는데, 마음의 영역은 아픈 사람들만 챙기는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마음도 더 즐겁고 행복하게, 무엇보다도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챙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마음에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런 장(場)을 여는 것이 더 큰 목표입니다.


상담받으러 오는 분들은 어떤 걱정을 갖고 오시나요? 그분들께 하실 말씀이 있다면?

치과 가서 얼굴 가리고 충치만 탁 내보일 때처럼 내 약한 부분만 보여주는 것이 좀 민망할 수 있잖아요. '나의 이런 어려운 모습만 나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런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건강하지만 위장은 좀 약할 수 있잖아요?
너무 망설이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상담을 받기까지 참 많이 망설였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저와 공유하는 그 어려움이 한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지금, 마음의 이 부분이 아프신 거구나'라고 받아들인답니다. 너무 망설이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김지연 상담심리사 연락처:

intothebluep@gmail.com


(브런치, 2018-10-24)

https://brunch.co.kr/@wal8am/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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