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相 서로 상 + 談 이야기 담) = 변화의 시작
오늘의 목적지는 영등포산업선교회 쉼힐링센터. 대체로 직장에 있는 시간이라 그냥 밖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소풍 나온 것 마냥 기분 좋아지는 화창한 평일 오후. 갔다하면 길을 잃어 시간을 넉넉히 예상하고 움직여야하는 영등포. 낯선 곳에서 길을 잃었을 때 복덕방을 발견하곤 안심했던 것처럼 삶의 길 어딘가에서 물음을 갖고 들어섰던 상담실. 그렇게 익숙하고도 낯선 곳으로 그녀를 만나러 간다. “인터뷰”라 부르고 “상담”이 일어날 그 장場으로.
<활동가 이야기 주간> & 느슨한 집단상담
Q. ‘더이음’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요?
<활동가 건강권 포럼>*에서 발표했던 분들이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꾸준히 만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려고 매달 후속모임을 하는데 거기서 <활동가 이야기 주간>**이 논의 됐어요. 2019활동가 이야기 주간은 기존과 다르게 이야기 모임을 여는 주체가 주제와 사람을 모으는 방식을 정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는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잠’으로 나누고 싶어서 이야기모임을 열었어요. 활동가들은 활동과 일상의 경계가 불분명해서 긴장이 지속되고 과각성으로 수면 장애를 호소하고 건강 손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한 번의 만남으로 ‘꿀잠’을 선물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완을 경험하면서 조금은 새롭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만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활동가 건강권 포럼> 2019년 7월 박종필추모사업회(준)가 활동 중에 죽음을 맞이한 활동가 한명의 죽음을 기리는 것을 넘어, 또 다른 활동가들의 죽음을 막고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활동 이 가능한 환경 조성을 위해 기획한 포럼. 자료집 내려받기
**<활동가 이야기 주간> 활동가들이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활동을 통한 변화 사례를 확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어서 대화하고, 기록하고, 공유하는 프로젝트로 2018년부터 더이음과 아름다운재단이 공동으로 진행해 오고 있음.
* 활동가 건강권 포럼 (사진:비마이너)
활동가 & 상담전문가
Q.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셨고 어떤 일들이 있으셨나요?
큰 애를 키울 때는 기존 시민사회운동단체 활동의 연장선에서 시민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나 교육과 교류를 위한 활동을 했어요. 인천에 살면서도 서울 동북쪽에 있는 사무실에 나갔어요. 멀었죠. 그러다 진보정당 활동을 하면서 지역에서 더 단단히 뿌리 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둘째를 가졌을 때 ‘동네친구도 사귀고 우리 마을에서 아이들과 엄마들의 품앗이 공동체를 만들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분명해졌어요.
또, <어린이도서연구회>의 <동화읽는어른>에서 어린이 책을 읽는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아동센터에서 시나 그림책을 읽고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매주 세 시간씩 저학년, 고학년 두 그룹의 아이들을 꾸준히 만났어요. 우리 아이들은 동네 친구에게 맡기고요. 2000년대 초, IMF 이후라 실업이 큰 이슈인 시절이었죠. 가정이 해체돼서 조손가정 아이들도 많았고 방임이나 학대 등 이차적 고통을 겪는 아이들도 많았어요. 후원자가 성추행을 하는 일도 있었는데 아이들의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버거웠어요. 듣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그때는 아이들을 연계할 수 있는 곳이나 전문가를 찾는 게 쉽지 않았고 상담을 하려해도 사회적 자원이 많지 않고 비용도 비쌌어요. 그래서 ‘내가 공부를 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2005년 뒤늦게 대학원에서 상담을 공부하고 상담자로서의 삶을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쌍용자동차 대량 해고사태가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있는데 우연히 집단 상담에서 <와락>* 활동을 하던 선생님을 만나게 됐어요. 이후에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해보자 한 것이 귀한 인연이 되었죠. 그 후 2012년인가 유성기업의 불법 직장폐쇄 이후 노조파괴와 탄압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해서 노동자치유활동을 하는 <충남노동인권센터 노동자심리치유사업단 두리공감>의 실태조사에 참여하면서 투쟁사업장의 노동자 마음건강 관련 활동을 시작했어요. 처음 상담심리를 공부할 때 ‘내가 전문가가 되서 이웃들의 일상을 지키는 활동가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씨앗을 뿌린 거죠. 이어서 14년 <와락치유단>**에 결합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거 같아요.
*<와락>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가족들이 실직가정의 일상성 회복을 위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고문피해자 재단법인 ‘진실의 힘’, 3000여명의 시민들, 경기도, 평택시의 기금으로 2011년 설립한 심리치유센터.
**<와락치유단> 와락이 2014년 쌍용자동차 외 장기투쟁사업장의 해고 노동자들과 가족들, 밀양, 강정 등 투쟁하는 이에게 사회적 관심과 지지를 나누기 위해 만든 상담 치유자 그룹
여기, 우리가 만난 이곳은 <사회활동가와 노동자를 위한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 줄여서 <통통톡>이라고 하는데 통통톡의 상담, 치유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에요. 노동자, 노동운동하는 사람들, 활동가들의 마음 건강에 대해 심리적인 대책이 필요하고 치유활동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오랫동안 있어 왔는데 2016년 7월1일 여러 단체들이 힘을 모아 통통톡이라는 네트워크를 출범하게 되었죠.
와락 와락치유단, 영등포산업선교회 쉼힐링센터, 향린교회 길목협동조합 마음치유팀 심심,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 등 여러 단체와 개인의 네트워크에요. 해고자나 장기투쟁사업장의 노동자나 활동가들이 상담을 하려면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영등포산업선교회가 이 공간을 내 준거죠. 처음에는 가운데 방만 상담실이었는데 최근에는 상담이 많아져 양쪽을 쓰고, 가끔은 저쪽 끝에 있는 목사님 사무실까지 쓰기도 해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미약한데 서로서로 마음이 더해져 이루어지는 것들은 놀라울 때가 많아요. 참 감사한 인연이지요.
Q.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분들을 상담하시는 거니까 활동가를 위한 활동가, 치유자를 위한 치유자인 거네요?
<와락치유단> 명함을 만들면서 <와락치유단>을 설명하는 말이 무엇일지 고민한 기억이 나요.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어요. 경험적으로 봐도 그렇고요. 사회운동, 공익활동을 하시는 분들을 사회의 아픈 부분을 드러내고 고치는, 우리 사회의 아픔과 모순을 치유하는 치유자로 바라보고 있어요. 활동가들은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사람이에요. “별거 아닌데”, “별거 안 해요”, “조합에서 이것만 해요” 말씀하지만 무슨 일만 있으면 바로 조합원, 회원들한테 연락을 받는 분들이죠. “니들은 내가 낸 조합비, 회비로 월급 받으면서” 같은 얘기도 들어요. 좋은 얘기보다는 아프고 힘든 얘기를 주로 듣게 되죠.
노동, 인권 등 모든 이슈에 대해 최전선에서 상담하시는 분들이에요. 상담자들도 주로 타인의 고통을 듣는다는 점에서는 활동가들과 비슷한 경험을 하거든요. 저도 필요할 때는 제 마음에 온전히 귀기울여줄 상담자, 동료를 찾아가요. 타인의 고통을 곁에서 함께 하는 활동가, 치유자들에게는 반드시 자기를 돌보는 틈이 필요해요. 상담이어도 좋지만 명상이나 쉼과 이완을 배우는 프로그램도 좋고, 믿을 수 있는 동료와 진솔한 만남이어도 좋아요.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내가 지금 이렇구나!’하고 자기를 만나며 살필 수 있는 틈, 순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곁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어요. 활동가들이 마음을 내면 늘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는 거죠. 저는 제가 그렇게 활동가들의 자원으로 있으면 좋겠어요.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활동가 & 활동가를 건강하게 만드는 사회
Q. 그래도 예전보다는 마음을 돌보는 데 관심이 높아진 것 같은데 어떤가요?
<통통톡>에 상담 들어오는 양만 봐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싶지만 여전히 문턱이 높은 측면도 있어요. “그 힘든 시기도 지나왔는데, 지금 뭐?”, “의지가 나약해”, ‘똑같이 일을 해도 저 동료는 멀쩡한데 나는 왜 이래?’하며 건강문제를 개인의 취약성이나 자신의 잘못에서 찾으려는 모습들이 여전히 있어요. 건강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거든요. 우리 사회가 사회 문제를 개개인으로 파편화시키며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처럼 건강을 개개인의 돌봄이나 자기관리능력으로 보는 면이 있지요. 활동가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서도 잘 하고 싶고, 실수하면 안 된다는 엄정한 자기기준이 있어서 건강 얘기를 꺼내기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이 있어요. 최근 건강에 대한 부분이 이슈가 되서 반가운데 이제 막 씨앗들에 싹이 텄으니 앞으로 잘 가꿔 가면 좋겠어요.
Q. 싹을 잘 가꾸기 위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그게 어려운 것 같은데,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활동가들의 마음건강에 관심을 가진 상담자와 상담이 필요한 활동가를 연결할 수 있는 체계에 대한 고민이지요. 2018년 서울시 협치사업으로 <IT노동자 및 공익활동가 청년을 위한 심리지원>이 선거랑 맞물리는 바람에 압축적으로 진행됐어요. 추후에도 사업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계획했는데 추경예산 배정이 끝난 다음에 사업을 시작한 거죠.
고용불안이 높은 비정규직 청년이나 사회활동가들 모두 또 심리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많이 물어봤는데 노력하겠다는 것 외에 답을 하기 어려웠어요. 사회적 자원으로 심리지원을 지속하고 싶은 계획은 일차 좌절됐어요. 작년에 지속성에 대한 열망에 화답하고 싶어 공모사업을 냈는데 떨어졌고요. 워낙 비정규직 청년들이나 활동가들이 처한 환경이 열악해 마음 돌봄보다는 의료, 주거 등 긴급한 사업이 많다는 이유에서였을 거 에요. 이해는 돼요. 그래서 2020년 서울시 청년청에서 심리상담을 시작해서 반가웠어요. 지금은 뭐든 해보려고 해요. 활동가를 위한 프로젝트를 다양한 경로로 제안하면서 우리의 뜻에 동의하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고 싶어요.
시스템을 구축해서 토대를 만드는 것만큼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도 중요하지요. 우선 상담사들이 활동가들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은 ‘상담사들이 뭘 알아?’하는 불신이나 경계심이 있을 수 있어요. 활동가들 스스로 좀 다른 삶을 살아 왔다고 생각하다보니 삶에 대한 자긍심도 있지만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 수 있거든요.
<통통톡>에서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2018년에 진행한 상담 역량 강화 교육인데 고용환경이 불안한 알바노동자, IT산업 노동자, 성소수자, 장기투쟁하시는 분들의 상황과 심리에 대한 교육을 했어요. 인권감수성 강의도 듣고요. 사회정의상담에 관심 있는 상담자들이 교류하며 공부하는 모임도 만들어져 월 1회 진행되고 있고요. 또, 상담센터, 대학 등 기관에서 상담사 양성과정을 운영하지만 통통톡에서도 인턴쉽 과정을 열었어요. 노동운동,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신 분들 중에서 상담에 관심 있는 분들이 대학원 진학 등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데 같이 상담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 거죠. 노동자 치유를 위한 활동가를 양성하는 과정은 어디에도 없어서 <통통톡>에서 첫 시도를 했고요. 귀하고 소중해요. 네트워크로 열심히 많은 걸 해 왔어요.
* 상담자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모임 (사진:오현정)
현장 & 상담실
Q. 현장에서 활동가들을 상담해 오셨는데 오현정님에게는 어떤 시간이었나요?
노조파괴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장기투쟁사업장, 유성에서 한 분이 자살을 했을 때 영동에 몇 개월 동안 매주 또는 격주로 가서 조합원들을 만났어요. 동료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투쟁하는 현장은 전쟁터 같은 곳이라 “상담해서 뭐해? 우리는 이것, 이것만 해결되면 속이 뻥 뚫려요”하시죠. 국가인권위 권고사항도 소용없고, 법원에서 승소해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분들이 느끼는 분노, 무기력감이나 절망감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지만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없었어요. 그래도 ‘와서 말씀 나눠 주시면 그만큼 압(壓)도 좀 내려가고, 숨 한번 길게 내쉬면서 숨통도 좀 트이고, 버릴 것 있으면 버리고 비울 것 있으면 비우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갔어요.
현장에 가면 공장 문을 안 열어 주기도 해요. 오는 거 뻔히 아는데 정문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하고 신고해서 경찰이 출동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있어야 할 곳에 내가 있다. 실제로 곁에 있는 일, 함께 하고 싶다. 그냥 곁에만 있어도 괜찮다.’ 했어요. 가끔은 현장에서 상담자로서 뭔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자각하면서 내려놓은 게 도움이 됐지요. 그냥 곁에만 있어도, 잘 듣기만 해도, 온 마음으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알아주기만 해도 조합원분들이 조금은 생기를 얻으시는 걸 보면서 상담자로서의 태도나 마음가짐을 다잡게 된 귀한 시간이었어요.
Q. 현장에 있으면 상담을 받고 싶어도 상담실을 방문하는 게 어려우니까 현장에 상담실이 마련되는 건 줄 알았는데 그들이 도움을 요청하기도 전에 상담사가 먼저 찾아가는 거였네요?
유성기업 노동자들 같은 경우는 <두리공감>이라는 단체에서 계속 연대하고 지지, 지원하면서 상담이나 치유활동을 기획하기도 해요. 얘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그때는 그냥 분향소를 지키고 있었어요. 추모제도 같이 참여하고요. 상담사가 꼭 같이 있어야 하는지 묻는다면 잘 모르겠어요. 누가 답을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마음 가는 곳에 있어서 좋고, 그분들은 지금은 아니더라도 얘기할 수 있을 때 언제든 할 수 있으니 이후에 상담으로 만날 때 현장에 왔던 사람이라면 더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으려나요? 그 분들에게 물어보지는 못했네요.
Q. 어렴풋이 짐작은 되지만 ‘있을 곳에 있구나!’ 하는 부분이 궁금해요.
유성으로 가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분과 40분 정도 마음을 나눈 적이 있어요. 분향소에 그 분과 단 둘이 있었어요. 집회 때마다 지켜본 분이었어요. 그 분은 절 기억 못하겠지만요. 본인도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동료가 그렇게 되니까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지금 얼마나 힘든지’ 그 심정을 느끼며 듣기만 했어요. 그런 순간이 ‘잘 갔다. 있을 곳에 있다.’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전 에너지장을 믿어요. 제가 공명을 일으킬 수 있는 에너지장은 약할 수 있지만 마음에 품고 있어요. 2018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한 분이 자살을 해서 몇 년 만에 대한문에 분향소를 다시 차리게 됐어요. 마침 여름휴가 기간이어서 내내 분향소를 지킬 수 있었어요. 제가 쌍용자동차 조합원을 잘 아는 것도 아니라 좀 쌩뚱 맞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저희 아이들은 “엄마는 할 일도 없을 텐데 왜 거길 매일 가?”하며 궁금해 했어요. 그냥 가야 할 것 같았어요. 조문 오신 시민들 안내도 하고 그냥 그 자리에 있어요. 4일을 꼬박 있었죠. 분향소 옆에 진을 치고 있던 태극기부대에서 시체 팔이 한다며 온갖 혐오발언으로 도발을 했어요. 내가 들어도 끔찍한데 당사자들은 어떻겠어요. 총알만 없지 전쟁터가 따로 없어요. 제가 겁도 많고 키도 크지 않은데 싸움이 벌어지면 언제나 펜스 앞에 있는 거 에요. 당사자 분들 옆에 서 있는 거죠. 조곤조곤 따지기도 하고요. 그렇게 있어 주는 게 고마웠다는 얘기도 듣긴 했지만 그 분한테만 그런 걸 수 있지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해요. “그런 사람이 있었어?” 하며 대부분 모를 테지만 제 일을 하는 거죠. 안전했으면 좋겠고, 조금이라도 평화로웠으면 좋겠는 마음을 담아 에너지장을 펼치는 일, 제 나름의 연대인 거죠. 저 혼자 ‘그게 내 일이다’ 마음을 정하는 거 에요. 최근에는 집회나 현장에 자주 갈 수는 없지만 늘 마음으로는 포개고 있어요. 상담은 세팅해서 할 수도 있고, 현장에 같이 있는 것으로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저에게는 소중한 활동이에요. 굉장히 뻘쭘하지만요. 내가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고, 함께 하고 싶어요.
쌍용자동차 1인 시위 (사진:오현정)
활동가 & 엄마
Q. 마음으로 포개는 것이 마음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존재로 밖에서도 일어나는 일이 된다니 신비로운 이야기에요. 엄마로서의 삶은 어떠셨나요?
엄마로서의 삶은 자신 있게 ‘나쁜’ 엄마라고 말할 수 있죠. 아이들은 ‘엄마는 뭔가 중요한 일이 있을 수 있고, 그 중요한 일은 우리보다 우선일 수 있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외로웠겠죠. 살아가면서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우리를 잘 챙겨줬더라면 이러지 않을 텐데.’ 하며 원망할 수 있겠죠? 그럴 때 충분히 들어주려고요. 몰랐을 수도 있고,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겠지만 진심으로 사과하고 들어주고 싶어요. 늘 마음속에서는 ‘아이고 미안해라.’ 해요. 잘 커 줘서 고맙기도 하고요.
2018년에 <한국상담심리학회>에서 처음으로 사회적 역할을 잘 해온 상담사를 기리기 위한 ‘상담심리사상’을 제정했는데 감사하게도 제가 받았어요. 둘째에게 “엄마가 그동안 이렇게 다녔잖아? 그 활동에 대해 상을 받았어. 엄마 활동하라고 시간 내주고 견뎌준 덕분이야. 고마워.” 했더니 상장을 읽으면서 “응~” 하더라고요. 받은 꽃다발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주고 싶다니까 가장 큰 걸 골라서 자기 방에다 놓았어요. 아, 통째로 다 줬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큰 애는 대단하다고 하더라고요. 고맙죠. 잘 살 거라고 믿어요. 아이들 때문에 속상할 때는 있어도 불안하지는 않아요. 힘들면 내가 곁에 있어 줄 거니까. 뭐든 다 진심으로 마음을 들어주고 싶어요.
밖으로 돌보는 & 안으로 돌보는
Q. 자신의 삶은 어떻게 말하고 싶으세요?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자리이타(自利利他)>에요. “나를 이롭게 하는 게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거다.”를 화두로 든 지 10년 정도 됐어요. 잘 안 되니까 화두로 든 거겠죠? 유성으로 상담을 갈 때 일흔이 넘은 스승님께 “제가 충북 영동에 가요. 가고 오는데 여덟 시간이 넘게 걸려요. 상담은 서너 시간 하는데요. 가야 될 것 같아요. 가고 싶어요.” 했죠. 스승님께서 읊조리듯이 “참 편하고 돈 되는 데는 마음이 안 가고, 더 어렵고 돈이 안 되는 데로 마음이 가니 그걸 어쩌나. 마음 가는 대로 해야지. 그게 보살행이지.” 하시더라고요. 제가 보살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제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일 수 있는 지는 상담 받으면서 알게 됐지만요.
30대 때 우울했어요. 관계에서 좌절이 컸는데 직면하기보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견디고 회피한 것 같아요. 진보정당 활동도 몇 년 하면서 힘들었지만 재미있었고요.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을 찾아 밖으로만 향했기에 내면은 공허했는데 몰랐던 거죠. 가끔 일이 없을 때 ‘외롭네. 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 해, 사람을 만나야해.’ 하며 세상으로 돌았어요. 내 마음과 몸을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고 감정을 알아차리고 관계를 돌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너무 오랫동안요. 내가 지금 뭘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끝없이 묻긴 했는데 밖으로만 온통 주의를 기울여 묻느라 우울함과 슬픔을 마주하지 못한 거죠. 상담을 받고 공부하면서 ‘나는 왜 나보다 타인에게 이끌리지? 밖의 슬픔에는 자동적으로 반응하면서 왜 나를 위해 에너지를 쓰지 않지?’ 하는 의문을 갖게 됐어요. 전에는 워낙 자연스러운 습관이다 보니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자리이타>를 화두로 든 지 10년인데 ‘이제 조금씩 할 수 있겠다.’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스승님께는 “참 일에 겁이 없어. 뭐든지 누가 밖에서 필요하다면 덜컥 한다 말이야.” 하는 말씀을 듣지만요. 예전에는 공동체에 대한 지향이 강했는데 이제는 개인으로서의 삶도 잘 살아보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한 게 좋았는데 그것도 나의 모습이니까 그런 나를 잘 보듬고 돌보며 사는 게 남들한테 민폐 안 끼치는 거겠다 싶어요.
* 자리이타, 안과 밖을 두루 돌보는 게 중요 (사진:오현정)
마을 살이 & 관계의 힘
둘째를 낳고 동네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잖아요. 근데 동네 아줌마들하고 오가는 걸 해 본적이 없는 거예요. 고민하다 큰 아이 여름방학 때 부녀회장님을 찾아가 부녀회 사무실을 좀 빌려 달라고, 아파트 애들과 함께 독서교실을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좋다고 하시는 거 에요. 관리사무소 도장을 받아 방을 붙이고 신청을 받는데 초등 1-2학년 16명 정도가 신청을 했어요. ‘날 뭘 믿고?’ 의외였죠. 고마웠어요. 애들이랑 3일간 즐겁게 놀았어요. 노래도 부르고, 책도 읽고. 첫 수업을 마치고 왔는데 복숭아 한 상자랑 메모지가 있어요. 고맙다고요. 애들이랑 나눠 먹었어요. 다른 날은 다른 엄마가 꽝꽝 얼린 요쿠르트를 주었어요. 독서교실을 마치고 품앗이를 해 보고 싶다고 제안했는데 엄마들이 다들 부담스러워 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 둘이 찾아왔어요. 독서지도를 가르쳐 줄 수 있냐고요. 나는 독서지도사는 못하고 대신 어린이책을 같이 읽을 수는 있다고 했죠. 그렇게 아파트 아줌마들 열 몇 명이 매주 같이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누구네 집에 가서 차 마시고 밥 먹으며 이야기하는 모임이 시작됐어요. 동네 친구가 생긴 거죠. 그 다음 해에는 <굴포천살리기시민모임>의 <하천생태학교>에 같이 참여해 애들을 업고 전국의 생태 하천 투어를 다녔어요. 그리고 배운 것을 활용해서 동네 하천 생태 모니터도 하고. 그때 환경, 교육 관련된 책을 읽자며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독서 모임을 만들었는데 <다살림레츠>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아직도 이어지고 있답니다. 지역화폐로 품앗이도 하고 몇 년을 재미있게 살았어요.
2012년도에는 엄마들이 십시일반으로 마을에 공간을 얻고 덕분에 마을공동체라는 꿈도 한 번 꿔보았지요. 지금은 동력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아쉽지만 이제 17년이 되어가네요. 왜 안 없어지는지 서로 신기해해요. 올드 멤버들은 애들도 다 컸고 참여할 수 있는 모임도 없는데 ‘나는 이 공간이 있어서 잘 놀았고, 행복했고, 누군가 또 와서 즐겁게 놀지 않을까?’ 하는 것 같아요. 우리의 삶은 안전하게 어려움도 나누며 기댈 수 있는 사람, 관계, 공간이 필요하거든요.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면 좋겠다. 서로 나누고 돌보는 연결망에 대한 소망이 있구나.’싶어요. 인생에서 행복한 때를 꼽으라면 동네 엄마들과 함께한 순간들이 많이 떠올라요. 마음 건강이든 몸 건강이든, 서로 건강한 연결감을 느끼고 힘들 때 지지받고 공감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마음에 저장할 수 있으면 더 건강하게 치유적으로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을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요.
숲 & 변곡점 그리고 <뜻밖의 상담소>
Q. 마음에 ‘이런 거 필요한데. 이런 거 있었으면 좋겠는데. 거기 있고 싶은데.’ 하고 품었던 것들이 결국 그렇게 되었네요. 올해는 무슨 계획을 마음에 품고 계신가요?
주변 사람들 덕분이지요. 감사해요. 감사함을 느낄 수 있을 때는 정말 행복하고요. 올해는 숲해설가 과정을 들으면서 자연과 좀 가깝게 지내고 싶어요. 나무 얘기하면서 우리 삶을 얘기 하는 것도 좋고, 또 우리 마음을 얘기 하는 것도 좋아요. 자연이 참 좋죠. 제 각각 서로 평가하고 판단하며 뭐라 하지 않아요. 주변에 훌륭하고 능력 있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럴 때는 갑자기 내가 작아지는 경험을 하다가도 ‘다른 모습으로 사는 거지, 뭐. 생긴 대로 살아야지.’ 해요. 이런 걸 배울 수 있는 게 자연이지요.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이 있어요. 저 또한 그 선물을 누렸고, 그런 선물 같은 시간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코로나로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지혜를 나눌 수 있는 모임도 하고 싶어요. 삶에 있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들, 변곡점들이 있잖아요. 변화의 순간들이 위기로 오기도 하는 데요. 우리는 어떤 지점을 선택의 순간들로 생각하는지, 그 때 필요한 건 무엇인지,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다 보면 변화의 지점에서 방황할 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혜들이 모일 것 같아요. 생로병사를 주제로 모임을 해보려고요. 우리가 생에 대해 받아들이는 것이 다 다르잖아요. 늙어가는 것, 아픈 것, 죽는 것, 심리적 죽음, 사회적 죽음, 무기력, 등등. 살면서 누구나 다 겪으며 힘들게 지나오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많은 이야기와 지혜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집단의 힘과 지혜를 나누는 장이 치유 밥상, 대화의 만찬 등 다양하면 좋겠다 싶어요.
마지막으로 활동가들의 연결망을 촉진할 수 있는 장도 좀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 모임 기획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마음풍경 이야기 모임을 꾸준히 열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활동가들에게는 개별적인 심리지원도 필요하겠지만 서로 연결되어 경험을 나누고 지혜를 발현하며 생기를 찾을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해요. 상담실이라는 공간에서 상담만 하는 게 아니라 만나고 소통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도 하고 서로의 곁이 되어주고 서로를 살릴 수 있는 그런 아지트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좌충우돌할 것 같아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하다보면 되겠죠.
* 뜻밖의 상담소 워크숍 (사진:오현정)
* 사회정의상담 개념도 연구 논문 인터뷰 (사진:오현정)
상담을 아니,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한강산책으로 마음먹는다. “바람도 쐴 겸”이라는 자기 돌봄으로 한강진입로가 보이는 곳까지 곁을 내주시는 “오~”현정님. 한강에서 노을을 구경하는 재미와 노을을 보면 가슴이 열린다는 얘기를 작별 인사로 주고받으며 다시 각자의 장場으로 들어선다. 내가 들어선 곳에는 그녀가 말했던 나무들과 숲이 펼쳐진다. 아직 노을이 지려면 멀었는데 벌써 가슴이 열린 건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한 숨 한 숨 내쉬고 들이쉴 때 마다 가슴에서 따뜻함이 번진다. 그녀와 나눈 기운의 여진인 것 같다. “내가 있는 곳을 서로를 살리는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오현정님과 활동가들에게 노을 그림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당신이 있어 세상이 참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 노을 (그림:최지윤)
그리고 그 사이 제법 시간이 흘러 그녀가 꿈꾸기 시작했다던 “활동가들의 연결망을 촉진할 수 있는, 서로의 곁이 되어 줄 수 있는” 바로 그 공간이 만들어졌다. 약수역 인근에 위치한 ‘뜻밖의 상담소’가 드디어 7월에 문을 열었다는 기쁜 소식도 함께 전한다.
* 뜻밖의 상담소 (사진:오현정)
※ 본 인터뷰는 <더이음>의 활동가 인터뷰 일환으로, 글쓴이 최지윤님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원문 : https://activistweek.net/interview/?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4717904&t=board
상담 (相 서로 상 + 談 이야기 담) = 변화의 시작
오늘의 목적지는 영등포산업선교회 쉼힐링센터. 대체로 직장에 있는 시간이라 그냥 밖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소풍 나온 것 마냥 기분 좋아지는 화창한 평일 오후. 갔다하면 길을 잃어 시간을 넉넉히 예상하고 움직여야하는 영등포. 낯선 곳에서 길을 잃었을 때 복덕방을 발견하곤 안심했던 것처럼 삶의 길 어딘가에서 물음을 갖고 들어섰던 상담실. 그렇게 익숙하고도 낯선 곳으로 그녀를 만나러 간다. “인터뷰”라 부르고 “상담”이 일어날 그 장場으로.
<활동가 이야기 주간> & 느슨한 집단상담
Q. ‘더이음’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요?
<활동가 건강권 포럼>*에서 발표했던 분들이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꾸준히 만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려고 매달 후속모임을 하는데 거기서 <활동가 이야기 주간>**이 논의 됐어요. 2019활동가 이야기 주간은 기존과 다르게 이야기 모임을 여는 주체가 주제와 사람을 모으는 방식을 정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는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잠’으로 나누고 싶어서 이야기모임을 열었어요. 활동가들은 활동과 일상의 경계가 불분명해서 긴장이 지속되고 과각성으로 수면 장애를 호소하고 건강 손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한 번의 만남으로 ‘꿀잠’을 선물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완을 경험하면서 조금은 새롭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만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 활동가 건강권 포럼 (사진:비마이너)
활동가 & 상담전문가
Q.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셨고 어떤 일들이 있으셨나요?
큰 애를 키울 때는 기존 시민사회운동단체 활동의 연장선에서 시민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나 교육과 교류를 위한 활동을 했어요. 인천에 살면서도 서울 동북쪽에 있는 사무실에 나갔어요. 멀었죠. 그러다 진보정당 활동을 하면서 지역에서 더 단단히 뿌리 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둘째를 가졌을 때 ‘동네친구도 사귀고 우리 마을에서 아이들과 엄마들의 품앗이 공동체를 만들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분명해졌어요.
또, <어린이도서연구회>의 <동화읽는어른>에서 어린이 책을 읽는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아동센터에서 시나 그림책을 읽고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매주 세 시간씩 저학년, 고학년 두 그룹의 아이들을 꾸준히 만났어요. 우리 아이들은 동네 친구에게 맡기고요. 2000년대 초, IMF 이후라 실업이 큰 이슈인 시절이었죠. 가정이 해체돼서 조손가정 아이들도 많았고 방임이나 학대 등 이차적 고통을 겪는 아이들도 많았어요. 후원자가 성추행을 하는 일도 있었는데 아이들의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버거웠어요. 듣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그때는 아이들을 연계할 수 있는 곳이나 전문가를 찾는 게 쉽지 않았고 상담을 하려해도 사회적 자원이 많지 않고 비용도 비쌌어요. 그래서 ‘내가 공부를 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2005년 뒤늦게 대학원에서 상담을 공부하고 상담자로서의 삶을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쌍용자동차 대량 해고사태가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있는데 우연히 집단 상담에서 <와락>* 활동을 하던 선생님을 만나게 됐어요. 이후에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해보자 한 것이 귀한 인연이 되었죠. 그 후 2012년인가 유성기업의 불법 직장폐쇄 이후 노조파괴와 탄압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해서 노동자치유활동을 하는 <충남노동인권센터 노동자심리치유사업단 두리공감>의 실태조사에 참여하면서 투쟁사업장의 노동자 마음건강 관련 활동을 시작했어요. 처음 상담심리를 공부할 때 ‘내가 전문가가 되서 이웃들의 일상을 지키는 활동가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씨앗을 뿌린 거죠. 이어서 14년 <와락치유단>**에 결합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거 같아요.
여기, 우리가 만난 이곳은 <사회활동가와 노동자를 위한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 줄여서 <통통톡>이라고 하는데 통통톡의 상담, 치유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에요. 노동자, 노동운동하는 사람들, 활동가들의 마음 건강에 대해 심리적인 대책이 필요하고 치유활동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오랫동안 있어 왔는데 2016년 7월1일 여러 단체들이 힘을 모아 통통톡이라는 네트워크를 출범하게 되었죠.
와락 와락치유단, 영등포산업선교회 쉼힐링센터, 향린교회 길목협동조합 마음치유팀 심심,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 등 여러 단체와 개인의 네트워크에요. 해고자나 장기투쟁사업장의 노동자나 활동가들이 상담을 하려면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영등포산업선교회가 이 공간을 내 준거죠. 처음에는 가운데 방만 상담실이었는데 최근에는 상담이 많아져 양쪽을 쓰고, 가끔은 저쪽 끝에 있는 목사님 사무실까지 쓰기도 해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미약한데 서로서로 마음이 더해져 이루어지는 것들은 놀라울 때가 많아요. 참 감사한 인연이지요.
Q.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분들을 상담하시는 거니까 활동가를 위한 활동가, 치유자를 위한 치유자인 거네요?
<와락치유단> 명함을 만들면서 <와락치유단>을 설명하는 말이 무엇일지 고민한 기억이 나요.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어요. 경험적으로 봐도 그렇고요. 사회운동, 공익활동을 하시는 분들을 사회의 아픈 부분을 드러내고 고치는, 우리 사회의 아픔과 모순을 치유하는 치유자로 바라보고 있어요. 활동가들은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사람이에요. “별거 아닌데”, “별거 안 해요”, “조합에서 이것만 해요” 말씀하지만 무슨 일만 있으면 바로 조합원, 회원들한테 연락을 받는 분들이죠. “니들은 내가 낸 조합비, 회비로 월급 받으면서” 같은 얘기도 들어요. 좋은 얘기보다는 아프고 힘든 얘기를 주로 듣게 되죠.
노동, 인권 등 모든 이슈에 대해 최전선에서 상담하시는 분들이에요. 상담자들도 주로 타인의 고통을 듣는다는 점에서는 활동가들과 비슷한 경험을 하거든요. 저도 필요할 때는 제 마음에 온전히 귀기울여줄 상담자, 동료를 찾아가요. 타인의 고통을 곁에서 함께 하는 활동가, 치유자들에게는 반드시 자기를 돌보는 틈이 필요해요. 상담이어도 좋지만 명상이나 쉼과 이완을 배우는 프로그램도 좋고, 믿을 수 있는 동료와 진솔한 만남이어도 좋아요. 그게 무엇이든 간에 ‘내가 지금 이렇구나!’하고 자기를 만나며 살필 수 있는 틈, 순간을 함께 만들어가는, 곁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어요. 활동가들이 마음을 내면 늘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는 거죠. 저는 제가 그렇게 활동가들의 자원으로 있으면 좋겠어요.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활동가 & 활동가를 건강하게 만드는 사회
Q. 그래도 예전보다는 마음을 돌보는 데 관심이 높아진 것 같은데 어떤가요?
<통통톡>에 상담 들어오는 양만 봐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싶지만 여전히 문턱이 높은 측면도 있어요. “그 힘든 시기도 지나왔는데, 지금 뭐?”, “의지가 나약해”, ‘똑같이 일을 해도 저 동료는 멀쩡한데 나는 왜 이래?’하며 건강문제를 개인의 취약성이나 자신의 잘못에서 찾으려는 모습들이 여전히 있어요. 건강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거든요. 우리 사회가 사회 문제를 개개인으로 파편화시키며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처럼 건강을 개개인의 돌봄이나 자기관리능력으로 보는 면이 있지요. 활동가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서도 잘 하고 싶고, 실수하면 안 된다는 엄정한 자기기준이 있어서 건강 얘기를 꺼내기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이 있어요. 최근 건강에 대한 부분이 이슈가 되서 반가운데 이제 막 씨앗들에 싹이 텄으니 앞으로 잘 가꿔 가면 좋겠어요.
Q. 싹을 잘 가꾸기 위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그게 어려운 것 같은데,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활동가들의 마음건강에 관심을 가진 상담자와 상담이 필요한 활동가를 연결할 수 있는 체계에 대한 고민이지요. 2018년 서울시 협치사업으로 <IT노동자 및 공익활동가 청년을 위한 심리지원>이 선거랑 맞물리는 바람에 압축적으로 진행됐어요. 추후에도 사업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계획했는데 추경예산 배정이 끝난 다음에 사업을 시작한 거죠.
고용불안이 높은 비정규직 청년이나 사회활동가들 모두 또 심리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많이 물어봤는데 노력하겠다는 것 외에 답을 하기 어려웠어요. 사회적 자원으로 심리지원을 지속하고 싶은 계획은 일차 좌절됐어요. 작년에 지속성에 대한 열망에 화답하고 싶어 공모사업을 냈는데 떨어졌고요. 워낙 비정규직 청년들이나 활동가들이 처한 환경이 열악해 마음 돌봄보다는 의료, 주거 등 긴급한 사업이 많다는 이유에서였을 거 에요. 이해는 돼요. 그래서 2020년 서울시 청년청에서 심리상담을 시작해서 반가웠어요. 지금은 뭐든 해보려고 해요. 활동가를 위한 프로젝트를 다양한 경로로 제안하면서 우리의 뜻에 동의하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가고 싶어요.
시스템을 구축해서 토대를 만드는 것만큼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도 중요하지요. 우선 상담사들이 활동가들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은 ‘상담사들이 뭘 알아?’하는 불신이나 경계심이 있을 수 있어요. 활동가들 스스로 좀 다른 삶을 살아 왔다고 생각하다보니 삶에 대한 자긍심도 있지만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 수 있거든요.
<통통톡>에서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2018년에 진행한 상담 역량 강화 교육인데 고용환경이 불안한 알바노동자, IT산업 노동자, 성소수자, 장기투쟁하시는 분들의 상황과 심리에 대한 교육을 했어요. 인권감수성 강의도 듣고요. 사회정의상담에 관심 있는 상담자들이 교류하며 공부하는 모임도 만들어져 월 1회 진행되고 있고요. 또, 상담센터, 대학 등 기관에서 상담사 양성과정을 운영하지만 통통톡에서도 인턴쉽 과정을 열었어요. 노동운동,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신 분들 중에서 상담에 관심 있는 분들이 대학원 진학 등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데 같이 상담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 거죠. 노동자 치유를 위한 활동가를 양성하는 과정은 어디에도 없어서 <통통톡>에서 첫 시도를 했고요. 귀하고 소중해요. 네트워크로 열심히 많은 걸 해 왔어요.
* 상담자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모임 (사진:오현정)
현장 & 상담실
Q. 현장에서 활동가들을 상담해 오셨는데 오현정님에게는 어떤 시간이었나요?
노조파괴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장기투쟁사업장, 유성에서 한 분이 자살을 했을 때 영동에 몇 개월 동안 매주 또는 격주로 가서 조합원들을 만났어요. 동료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투쟁하는 현장은 전쟁터 같은 곳이라 “상담해서 뭐해? 우리는 이것, 이것만 해결되면 속이 뻥 뚫려요”하시죠. 국가인권위 권고사항도 소용없고, 법원에서 승소해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분들이 느끼는 분노, 무기력감이나 절망감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지만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없었어요. 그래도 ‘와서 말씀 나눠 주시면 그만큼 압(壓)도 좀 내려가고, 숨 한번 길게 내쉬면서 숨통도 좀 트이고, 버릴 것 있으면 버리고 비울 것 있으면 비우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갔어요.
현장에 가면 공장 문을 안 열어 주기도 해요. 오는 거 뻔히 아는데 정문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하고 신고해서 경찰이 출동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있어야 할 곳에 내가 있다. 실제로 곁에 있는 일, 함께 하고 싶다. 그냥 곁에만 있어도 괜찮다.’ 했어요. 가끔은 현장에서 상담자로서 뭔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자각하면서 내려놓은 게 도움이 됐지요. 그냥 곁에만 있어도, 잘 듣기만 해도, 온 마음으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알아주기만 해도 조합원분들이 조금은 생기를 얻으시는 걸 보면서 상담자로서의 태도나 마음가짐을 다잡게 된 귀한 시간이었어요.
Q. 현장에 있으면 상담을 받고 싶어도 상담실을 방문하는 게 어려우니까 현장에 상담실이 마련되는 건 줄 알았는데 그들이 도움을 요청하기도 전에 상담사가 먼저 찾아가는 거였네요?
유성기업 노동자들 같은 경우는 <두리공감>이라는 단체에서 계속 연대하고 지지, 지원하면서 상담이나 치유활동을 기획하기도 해요. 얘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그때는 그냥 분향소를 지키고 있었어요. 추모제도 같이 참여하고요. 상담사가 꼭 같이 있어야 하는지 묻는다면 잘 모르겠어요. 누가 답을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마음 가는 곳에 있어서 좋고, 그분들은 지금은 아니더라도 얘기할 수 있을 때 언제든 할 수 있으니 이후에 상담으로 만날 때 현장에 왔던 사람이라면 더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으려나요? 그 분들에게 물어보지는 못했네요.
Q. 어렴풋이 짐작은 되지만 ‘있을 곳에 있구나!’ 하는 부분이 궁금해요.
유성으로 가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분과 40분 정도 마음을 나눈 적이 있어요. 분향소에 그 분과 단 둘이 있었어요. 집회 때마다 지켜본 분이었어요. 그 분은 절 기억 못하겠지만요. 본인도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동료가 그렇게 되니까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지금 얼마나 힘든지’ 그 심정을 느끼며 듣기만 했어요. 그런 순간이 ‘잘 갔다. 있을 곳에 있다.’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전 에너지장을 믿어요. 제가 공명을 일으킬 수 있는 에너지장은 약할 수 있지만 마음에 품고 있어요. 2018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한 분이 자살을 해서 몇 년 만에 대한문에 분향소를 다시 차리게 됐어요. 마침 여름휴가 기간이어서 내내 분향소를 지킬 수 있었어요. 제가 쌍용자동차 조합원을 잘 아는 것도 아니라 좀 쌩뚱 맞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저희 아이들은 “엄마는 할 일도 없을 텐데 왜 거길 매일 가?”하며 궁금해 했어요. 그냥 가야 할 것 같았어요. 조문 오신 시민들 안내도 하고 그냥 그 자리에 있어요. 4일을 꼬박 있었죠. 분향소 옆에 진을 치고 있던 태극기부대에서 시체 팔이 한다며 온갖 혐오발언으로 도발을 했어요. 내가 들어도 끔찍한데 당사자들은 어떻겠어요. 총알만 없지 전쟁터가 따로 없어요. 제가 겁도 많고 키도 크지 않은데 싸움이 벌어지면 언제나 펜스 앞에 있는 거 에요. 당사자 분들 옆에 서 있는 거죠. 조곤조곤 따지기도 하고요. 그렇게 있어 주는 게 고마웠다는 얘기도 듣긴 했지만 그 분한테만 그런 걸 수 있지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해요. “그런 사람이 있었어?” 하며 대부분 모를 테지만 제 일을 하는 거죠. 안전했으면 좋겠고, 조금이라도 평화로웠으면 좋겠는 마음을 담아 에너지장을 펼치는 일, 제 나름의 연대인 거죠. 저 혼자 ‘그게 내 일이다’ 마음을 정하는 거 에요. 최근에는 집회나 현장에 자주 갈 수는 없지만 늘 마음으로는 포개고 있어요. 상담은 세팅해서 할 수도 있고, 현장에 같이 있는 것으로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저에게는 소중한 활동이에요. 굉장히 뻘쭘하지만요. 내가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고, 함께 하고 싶어요.
쌍용자동차 1인 시위 (사진:오현정)
활동가 & 엄마
Q. 마음으로 포개는 것이 마음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존재로 밖에서도 일어나는 일이 된다니 신비로운 이야기에요. 엄마로서의 삶은 어떠셨나요?
엄마로서의 삶은 자신 있게 ‘나쁜’ 엄마라고 말할 수 있죠. 아이들은 ‘엄마는 뭔가 중요한 일이 있을 수 있고, 그 중요한 일은 우리보다 우선일 수 있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외로웠겠죠. 살아가면서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우리를 잘 챙겨줬더라면 이러지 않을 텐데.’ 하며 원망할 수 있겠죠? 그럴 때 충분히 들어주려고요. 몰랐을 수도 있고,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겠지만 진심으로 사과하고 들어주고 싶어요. 늘 마음속에서는 ‘아이고 미안해라.’ 해요. 잘 커 줘서 고맙기도 하고요.
2018년에 <한국상담심리학회>에서 처음으로 사회적 역할을 잘 해온 상담사를 기리기 위한 ‘상담심리사상’을 제정했는데 감사하게도 제가 받았어요. 둘째에게 “엄마가 그동안 이렇게 다녔잖아? 그 활동에 대해 상을 받았어. 엄마 활동하라고 시간 내주고 견뎌준 덕분이야. 고마워.” 했더니 상장을 읽으면서 “응~” 하더라고요. 받은 꽃다발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주고 싶다니까 가장 큰 걸 골라서 자기 방에다 놓았어요. 아, 통째로 다 줬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큰 애는 대단하다고 하더라고요. 고맙죠. 잘 살 거라고 믿어요. 아이들 때문에 속상할 때는 있어도 불안하지는 않아요. 힘들면 내가 곁에 있어 줄 거니까. 뭐든 다 진심으로 마음을 들어주고 싶어요.
밖으로 돌보는 & 안으로 돌보는
Q. 자신의 삶은 어떻게 말하고 싶으세요?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자리이타(自利利他)>에요. “나를 이롭게 하는 게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거다.”를 화두로 든 지 10년 정도 됐어요. 잘 안 되니까 화두로 든 거겠죠? 유성으로 상담을 갈 때 일흔이 넘은 스승님께 “제가 충북 영동에 가요. 가고 오는데 여덟 시간이 넘게 걸려요. 상담은 서너 시간 하는데요. 가야 될 것 같아요. 가고 싶어요.” 했죠. 스승님께서 읊조리듯이 “참 편하고 돈 되는 데는 마음이 안 가고, 더 어렵고 돈이 안 되는 데로 마음이 가니 그걸 어쩌나. 마음 가는 대로 해야지. 그게 보살행이지.” 하시더라고요. 제가 보살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제가 얼마나 이상한 사람일 수 있는 지는 상담 받으면서 알게 됐지만요.
30대 때 우울했어요. 관계에서 좌절이 컸는데 직면하기보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견디고 회피한 것 같아요. 진보정당 활동도 몇 년 하면서 힘들었지만 재미있었고요.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을 찾아 밖으로만 향했기에 내면은 공허했는데 몰랐던 거죠. 가끔 일이 없을 때 ‘외롭네. 역시 사람은 일을 해야 해, 사람을 만나야해.’ 하며 세상으로 돌았어요. 내 마음과 몸을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고 감정을 알아차리고 관계를 돌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너무 오랫동안요. 내가 지금 뭘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끝없이 묻긴 했는데 밖으로만 온통 주의를 기울여 묻느라 우울함과 슬픔을 마주하지 못한 거죠. 상담을 받고 공부하면서 ‘나는 왜 나보다 타인에게 이끌리지? 밖의 슬픔에는 자동적으로 반응하면서 왜 나를 위해 에너지를 쓰지 않지?’ 하는 의문을 갖게 됐어요. 전에는 워낙 자연스러운 습관이다 보니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자리이타>를 화두로 든 지 10년인데 ‘이제 조금씩 할 수 있겠다.’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스승님께는 “참 일에 겁이 없어. 뭐든지 누가 밖에서 필요하다면 덜컥 한다 말이야.” 하는 말씀을 듣지만요. 예전에는 공동체에 대한 지향이 강했는데 이제는 개인으로서의 삶도 잘 살아보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한 게 좋았는데 그것도 나의 모습이니까 그런 나를 잘 보듬고 돌보며 사는 게 남들한테 민폐 안 끼치는 거겠다 싶어요.
* 자리이타, 안과 밖을 두루 돌보는 게 중요 (사진:오현정)
마을 살이 & 관계의 힘
둘째를 낳고 동네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잖아요. 근데 동네 아줌마들하고 오가는 걸 해 본적이 없는 거예요. 고민하다 큰 아이 여름방학 때 부녀회장님을 찾아가 부녀회 사무실을 좀 빌려 달라고, 아파트 애들과 함께 독서교실을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좋다고 하시는 거 에요. 관리사무소 도장을 받아 방을 붙이고 신청을 받는데 초등 1-2학년 16명 정도가 신청을 했어요. ‘날 뭘 믿고?’ 의외였죠. 고마웠어요. 애들이랑 3일간 즐겁게 놀았어요. 노래도 부르고, 책도 읽고. 첫 수업을 마치고 왔는데 복숭아 한 상자랑 메모지가 있어요. 고맙다고요. 애들이랑 나눠 먹었어요. 다른 날은 다른 엄마가 꽝꽝 얼린 요쿠르트를 주었어요. 독서교실을 마치고 품앗이를 해 보고 싶다고 제안했는데 엄마들이 다들 부담스러워 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 둘이 찾아왔어요. 독서지도를 가르쳐 줄 수 있냐고요. 나는 독서지도사는 못하고 대신 어린이책을 같이 읽을 수는 있다고 했죠. 그렇게 아파트 아줌마들 열 몇 명이 매주 같이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누구네 집에 가서 차 마시고 밥 먹으며 이야기하는 모임이 시작됐어요. 동네 친구가 생긴 거죠. 그 다음 해에는 <굴포천살리기시민모임>의 <하천생태학교>에 같이 참여해 애들을 업고 전국의 생태 하천 투어를 다녔어요. 그리고 배운 것을 활용해서 동네 하천 생태 모니터도 하고. 그때 환경, 교육 관련된 책을 읽자며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독서 모임을 만들었는데 <다살림레츠>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아직도 이어지고 있답니다. 지역화폐로 품앗이도 하고 몇 년을 재미있게 살았어요.
2012년도에는 엄마들이 십시일반으로 마을에 공간을 얻고 덕분에 마을공동체라는 꿈도 한 번 꿔보았지요. 지금은 동력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아쉽지만 이제 17년이 되어가네요. 왜 안 없어지는지 서로 신기해해요. 올드 멤버들은 애들도 다 컸고 참여할 수 있는 모임도 없는데 ‘나는 이 공간이 있어서 잘 놀았고, 행복했고, 누군가 또 와서 즐겁게 놀지 않을까?’ 하는 것 같아요. 우리의 삶은 안전하게 어려움도 나누며 기댈 수 있는 사람, 관계, 공간이 필요하거든요.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면 좋겠다. 서로 나누고 돌보는 연결망에 대한 소망이 있구나.’싶어요. 인생에서 행복한 때를 꼽으라면 동네 엄마들과 함께한 순간들이 많이 떠올라요. 마음 건강이든 몸 건강이든, 서로 건강한 연결감을 느끼고 힘들 때 지지받고 공감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마음에 저장할 수 있으면 더 건강하게 치유적으로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을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요.
숲 & 변곡점 그리고 <뜻밖의 상담소>
Q. 마음에 ‘이런 거 필요한데. 이런 거 있었으면 좋겠는데. 거기 있고 싶은데.’ 하고 품었던 것들이 결국 그렇게 되었네요. 올해는 무슨 계획을 마음에 품고 계신가요?
주변 사람들 덕분이지요. 감사해요. 감사함을 느낄 수 있을 때는 정말 행복하고요. 올해는 숲해설가 과정을 들으면서 자연과 좀 가깝게 지내고 싶어요. 나무 얘기하면서 우리 삶을 얘기 하는 것도 좋고, 또 우리 마음을 얘기 하는 것도 좋아요. 자연이 참 좋죠. 제 각각 서로 평가하고 판단하며 뭐라 하지 않아요. 주변에 훌륭하고 능력 있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럴 때는 갑자기 내가 작아지는 경험을 하다가도 ‘다른 모습으로 사는 거지, 뭐. 생긴 대로 살아야지.’ 해요. 이런 걸 배울 수 있는 게 자연이지요.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이 있어요. 저 또한 그 선물을 누렸고, 그런 선물 같은 시간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코로나로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지혜를 나눌 수 있는 모임도 하고 싶어요. 삶에 있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들, 변곡점들이 있잖아요. 변화의 순간들이 위기로 오기도 하는 데요. 우리는 어떤 지점을 선택의 순간들로 생각하는지, 그 때 필요한 건 무엇인지,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다 보면 변화의 지점에서 방황할 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지혜들이 모일 것 같아요. 생로병사를 주제로 모임을 해보려고요. 우리가 생에 대해 받아들이는 것이 다 다르잖아요. 늙어가는 것, 아픈 것, 죽는 것, 심리적 죽음, 사회적 죽음, 무기력, 등등. 살면서 누구나 다 겪으며 힘들게 지나오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많은 이야기와 지혜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집단의 힘과 지혜를 나누는 장이 치유 밥상, 대화의 만찬 등 다양하면 좋겠다 싶어요.
마지막으로 활동가들의 연결망을 촉진할 수 있는 장도 좀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 모임 기획이 참 좋았던 것 같아요. 마음풍경 이야기 모임을 꾸준히 열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활동가들에게는 개별적인 심리지원도 필요하겠지만 서로 연결되어 경험을 나누고 지혜를 발현하며 생기를 찾을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해요. 상담실이라는 공간에서 상담만 하는 게 아니라 만나고 소통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도 하고 서로의 곁이 되어주고 서로를 살릴 수 있는 그런 아지트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좌충우돌할 것 같아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하다보면 되겠죠.
* 뜻밖의 상담소 워크숍 (사진:오현정)
* 사회정의상담 개념도 연구 논문 인터뷰 (사진:오현정)
상담을 아니,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한강산책으로 마음먹는다. “바람도 쐴 겸”이라는 자기 돌봄으로 한강진입로가 보이는 곳까지 곁을 내주시는 “오~”현정님. 한강에서 노을을 구경하는 재미와 노을을 보면 가슴이 열린다는 얘기를 작별 인사로 주고받으며 다시 각자의 장場으로 들어선다. 내가 들어선 곳에는 그녀가 말했던 나무들과 숲이 펼쳐진다. 아직 노을이 지려면 멀었는데 벌써 가슴이 열린 건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한 숨 한 숨 내쉬고 들이쉴 때 마다 가슴에서 따뜻함이 번진다. 그녀와 나눈 기운의 여진인 것 같다. “내가 있는 곳을 서로를 살리는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오현정님과 활동가들에게 노을 그림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당신이 있어 세상이 참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 노을 (그림:최지윤)
그리고 그 사이 제법 시간이 흘러 그녀가 꿈꾸기 시작했다던 “활동가들의 연결망을 촉진할 수 있는, 서로의 곁이 되어 줄 수 있는” 바로 그 공간이 만들어졌다. 약수역 인근에 위치한 ‘뜻밖의 상담소’가 드디어 7월에 문을 열었다는 기쁜 소식도 함께 전한다.
* 뜻밖의 상담소 (사진:오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