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기대어 살아간다는 것은

2021-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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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기대어 살아간다는 것은

_ 최하늬 (피스모모)

 

“아프니까 쉬게 되네요.” 오랜만에 만난 동료와 안부를 주고받다가 내가 무심코 뱉었던 말이었다. 대화를 나눌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헤어지고 나서는 그 말이 생각 주변을 맴돌았다. 그랬다.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그제야 쉬겠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랬다, 나는 그랬다. 지금은 아프게 돼서야 쉬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 나자신에게 조금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쉼을 결정할 당시에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쉬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금이 옳은 시기인가, 더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내 옆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나 역시 그래야할 것 같았다. 내 자신을 부추기고 맞는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내 몸이 의지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랐다. 적어도 아픈 것을 알기 전까지는 내 몸 역시 암묵적으로나마 동의하고 있는 줄 알았다.


아픈 것을 알기 전까지는 내 몸 역시 암묵적으로나마 동의하고 있는 줄 알았다.

2019년 10월, 우연히 하게 되었던 검사에서 폐와 임파선에 염증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후 정밀 검사를 진행했다. 최종 진단은 ‘유육종증’이라는 희귀질환으로 자가면역질환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유육종증은 대부분 폐에 염증이 생겨 몸의 여러 기관으로 퍼지는데, 나 역시 폐로 시작해 겨드랑이 쪽 임파선, 비장으로 염증이 커지고 있었다. 의사는 정확한 발병의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을 거라 말했다. 다행인 것은 폐의 기능이 정상이었고 심각한 합병증도 없었다. 한 달이 넘게 검사를 마치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6개월 휴직을 결정했다.

 

괜찮을 거라고, 크게 아픈 곳이 없으니 이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이 정도는 누구나 다 하는 거니까 문제없을 거라고. 넘겨짚듯이 생각했고 그렇게 믿고 싶었는데 오랫동안 몸이 아팠다니. 처음으로 내 몸이 아프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거세게 밀려들어오는 죄책감을 어찌할 수 없었다. 왜 발병이 되었을까, 내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기에 폐에 염증이 생겼을까. 그동안 체중이 증가하지 않았던 것도 모두 이 이유 때문이었을까.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고 무기력감이 있었던 것도 모두 다 이것 때문이었을까. 의사는 유육종증의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병이 생긴 것이 모두 내 책임인 것만 같았다. 꼭 휴직을 하지 않았어도 되었다. 하지만 만약 계속 일을 하다가 병이 더 악화된다면 그때부터는 정말로 내 책임이 될 것 같았고 죄책감을 짊어진 책임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울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억울했다. 아픈 것도 싫었고 내가 계획하지 않았던 시기에 쉬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다. 나에겐, 만약 쉰다면, 생각만 해도 신나는 계획이란 것이 있었다. 그런데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갑자기 쉬어야 했다. 모두가 다 출근을 하러 밖으로 나가는데 나 혼자 집 안에서 있어야 한다니. 세상은 어제와 똑같이 굴러가는데 나만 그 흐름에서 쏙 빠져 나온 것 같았다. 이상한 죄책감이 들었고 몸을 돌보는 것이 조금 이기적인 행위처럼 느껴졌다. 주변에서는 잘 쉬라고, 몸을 잘 돌보라고 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쉬는 것인지도 모르겠더라.

 

휴직을 하고 얼마 동안은 몸을 잘 돌봐서 다시 건강해진 몸으로 복귀하고 싶었다. 유육종증이 짧은 기간에 나을 수 있는 질병이 아니었지만 애써 그 사실을 부정했다. 6개월이 지나면, 그때 즈음이면 다시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 달에 한번 씩 찍어보는 엑스레이에서 보이는 폐의 염증은 기대만큼 줄어드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정체될 때도 있었다. 그러다 5월 달에 진행한 정밀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조직 검사를 했다. 오른쪽 갑상선에 작은 암세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휴직하는 동안 잘 쉬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는 거였다. 나는 또 한 번 두려워졌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쉬는 것인지도 모르겠더라.


유육종증에 갑상선암까지. 이 정도면 충분히 힘든 것 아니냐고 생각했을 때, 누군가 나를 비웃는 것처럼 질병이 우르르 밀려들어왔다. 더욱이 장기간 복용했던 약(스테로이드)을 끊으면서 부작용처럼 몸에는 두드러기가 솟아났고 체중이 감소했고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더해졌다.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초반에는 어쩔 줄 몰랐다. 몸의 증상은 자꾸만 드러나고 마음은 더욱 힘들어지는데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인터넷으로 질병과 증상에 대해 수없이 검색을 해봐도, 증상에 대해서만 나와 있을 뿐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방법은 없었다.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통제하고 싶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극복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실패한다는 느낌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나의 일이기도 했지만 아닌 것이었다. 나는 몸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고 어떤 작용들이 결합하여 몸과 마음이 서로 영향을 받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결국 내 의지로 풀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받아들여야 했다. 지금껏 문제를 발견하면 해결책을 찾아 실천으로 옮기는 것에 익숙했는데, 내 몸은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했고 인정해야만 했다. 몸의 신호를 무시해서 아픔을 몰랐다면 이제부터는 몸의 신호에 세심하게 반응해야하는 거였다.


* 몸의 신호를 무시해서 아픔을 몰랐다면 이제부터는 몸의 신호에 세심하게 반응해야하는 거였다.


아프고 나서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읽었다. 그들의 경험과 질병을 통해, 아픔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몸은 통제의 대상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픔이 지속되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몸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질병과 함께 산다는 것, 몸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나를 보이지 않는 경계로 밀어 붙이는 것을 멈추고 나와 타협점을 꾸준히 찾아나가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안했다. 특히 갑상선 수술을 앞두고 예측하지 못하는 변화를 맞이해야만 했다. 갑상선을 절제하고 내 몸의 한 부분이 사라지는 것 그로 인해 변화할 호르몬과 그에 영향을 받을 몸과 마음이 어떤 증상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두려웠다. 혹은 갑상선암이 ‘흔하기’ 때문에 주변에서 전하는 무수한 정보와 인터넷에 떠도는 말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익활동가 사회적 협동조합 동행의 다섯차례 심리상담 지원과 인권재단 사람의 마음건강검진을 신청했다. 더 이상 질병을 극복하거나 이기고 싶지 않지만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태어나 처음으로 맞이하는 것이니까.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심리상담 지원을 신청했다.


일주일에 한번, 총 여섯 번의 상담을 받았다. 주변에 나의 안녕을 걱정해주는 가족과 친구들, 동료들이 있지만 그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기는 어려웠다. 질병이란 반갑지 않는 주제로 계속 이야기하는 것도 뭔가 이상하게 눈치가 보였고 그들 역시 자신의 삶으로 충분히 바쁘고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고립시키고 싶지 않았고 도움을 받고 싶었다.


상담을 받은 날은 항상 일기를 썼다. 무엇을 느꼈고 무엇이 마음에 남았는지 기록했다. 기록하지 않으면 모두 날아갈 것만 같아서 글로 붙잡아 두고 싶었다. 잊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기장에 가장 많이 적어두었던 말은 ‘괜찮아’였다. 우울해도 괜찮고 무기력해도 괜찮다. 아침에 눈을 뜨긴 떴는데 왜 내가 일어나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해 계속 침대에 누워 있어도 괜찮다는 거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지 못해 기상챌린지에 번번이 실패해도, 아픈 무릎 때문에 운동을 멈추어야만 했어도, 머리가 한 움큼씩 빠져도, 출근 일수를 줄여도, 예전만큼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지 못해도, 괜찮은 것이었다. 모두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증상들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 나에겐 무엇보다 소중한 배움이었다. 대신 지금까지 부정적이라고 인식했던 몸의 증상이나 마음의 현상이 왜 부정적이고 고쳐야만 하고 극복해야 하는 것인지 묻기 시작했다.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특정한 시선으로 내 몸을 바라보았을까 하는 물음말이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마음을 쓰고 마음을 다잡고 혹은 마음을 먹으면서 나를 자꾸만 어딘가로 밀어 붙이고 있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 누군가를 위해 나를 애써 다그치면서 했던 말과 행동들이 과연 내 자신에게는 무엇을 가져왔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고 믿었는데 말이다.


다섯 번의 상담 이후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 ‘심호흡 하세요’라며 간호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나를 깨웠고 다시 잠들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순간적으로 목 언저리를 조심스레 만져보았는데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 많이 아팠다. 갑상선 수술이 별 것 아니라는 사람들의 명치를 한 대씩 치고 싶을 정도로! 사람의 얼굴 생김이 모두 다르듯이 몸의 상태가 다르고 그에 따라 회복 속도가 다르다. 나보다 늦게 수술한 분이 먼저 퇴원 했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고 약해진 부신 기능으로 스테로이드를 다시 복용해야 했을 때도 조금 슬프긴 했지만 덜 속상하기로 다짐했다. 내 몸은 지금 이게 필요하니까.


애써 회복하려고 하기보다 마음을 풀어놓고 몸의 신호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사실 처음에는 그 정도의 기운 밖에는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도, 약 때문에 밤에 자는 게 어렵고, 또다시 머리카락이 빠져도, 여전히 사람을 만나서 에너지를 쓰면 몸에 열이 오르고, 피곤이 빨리 찾아와도. 그럴때마다 나를 좀 내버려두고 다독였다. 지금은 휴식이 충분히 필요할 시기니까 그 시기를 온전히 쉬어도 괜찮았다. 그럼, 괜찮고말고.


 

아픔을 겪으면서, 변화하는 몸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다듬으며 한 해를 보냈다. 1년 전 유육종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만 해도 나를 향한 죄책감이 무척 컸다. 모든 것이 나의 잘못 같았고 일에 대한 회의감마저 높았다. 인생은 예측 불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지만 나는 내 삶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이야말로 예측불가능성이었으며,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철저히 깨달았다. 몸으로 다시 본 세상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건 생각보다 큰 용기였다. 또한 잘하고 못함으로 이기고 지는 따위의 게임이 아니니, 질병이 찾아왔다고 해서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었다.


몸에게 내가 의지해야한다고 생각하니, 그 몸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 더 너그러워졌다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은 툭툭 털어버렸고, 다만 새로운 내가 살아갈 세상 속의 나는 지금의 귀한 경험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여전히 아프고 또 다른 질병이 찾아올까 솔직히 두렵지만 조금은 덜 불안하다. 이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몸에 더 많이 의지했으면 한다. 꼭 그랬으면 한다.  


이 글은 '공익활동가의 자기돌봄 및 마음건강'을 주제로 글을 기고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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